일본 배양육 기술의 진화, 도쿄대 11g 치킨이 보여준 미래
일본은 오랜 시간 전통 식문화와 첨단 식품 기술이 공존해온 나라다. 최근에는 배양육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존에는 미국, 네덜란드, 이스라엘 같은 국가들이 주도했던 이 분야에서, 일본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연구개발을 이어왔지만, 최근 들어 대학과 민간 스타트업의 협업이 강화되며 실질적인 성과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특히 도쿄대학교에서 구조화된 배양 치킨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소식은 업계와 언론 모두에게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과거에는 세포를 단순히 배양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실제 고기와 유사한 조직감과 영양, 풍미까지 구현하는 것이 배양육 기술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일본의 연구진은 이 흐름 속에서 생리학적 구조와 식감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로운 배양 시스템을 고안해냈고, 이는 향후 상용화를 위한 기술적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 내에서 식품 기술에 대한 규제와 윤리적 논의가 비교적 엄격한 만큼, 이번 성과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기술 신뢰성을 증명한 셈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은 고령화와 식량 자급률 문제, 식문화 변화라는 복합적 이슈를 안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배양육은 미래형 식량 시스템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실제로 여러 연구소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과 소비자 수용성 확보에 나서는 중이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전반에 배양육의 가능성과 확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 내 배양육 기술의 구체적인 발전 사례와 함께, 그 기술적 의미, 상용화를 위한 과제, 일본의 제도적 환경까지 폭넓게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도쿄대 연구팀의 성과를 중심으로 기술 해부를 시도하고, 민간 기업들의 전략과 향후 방향성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더할 예정이다.
일본 배양육 기술의 분기점이 된 도쿄대의 조직 배양
2023년, 일본 도쿄대학교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실제 고기와 유사한 조직을 가진 배양 치킨 조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의 배양육이 갖고 있던 평면적 구조 한계를 넘어서, 다층적인 세포 배열과 유사 근육 조직 구현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이 배양 치킨의 무게는 11그램으로, 실험실 배양 식품으로는 상당한 양이었다.
핵심 기술은 ‘중공섬유 바이오리액터’라는 장치였다. 이는 가느다란 섬유 형태의 구조물 안으로 영양소와 산소를 전달해 세포가 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평판 배양과 달리 이 방식은 입체적인 조직 형성이 가능해 실제 고기와 흡사한 식감을 내는 데 유리하다. 또한 섬유 표면에는 근육세포와 지방세포가 적절히 배열되어 있어, 기존 배양육이 가지지 못했던 풍부한 조직감을 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구조화된 배양 기술은 향후 소비자 친화적인 배양육 제품을 상용화하는 데 핵심적인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고기 맛만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육류의 ‘식감’이라는 감각적 요소까지 재현하려는 시도는 기존 배양육 기술과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게다가 도쿄대 연구팀은 이러한 세포 배열 방식과 영양 전달 시스템을 통해, 기존보다 훨씬 높은 생산 효율과 품질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번 사례는 일본이 기술력 중심의 배양육 연구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기술은 향후 스케일업, 즉 대량 생산 기술로도 확장 가능한 구조라는 점에서 업계에서도 실용화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배양육의 품질을 결정짓는 것은 단순히 세포 배양 속도만이 아니라, 세포가 어떻게 자라고 어떤 구조로 결합되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을 이번 연구가 잘 보여주었다.
일본의 산업 전략과 규제, 배양육을 둘러싼 생태계
일본은 배양육을 단순한 실험실 기술로 머물게 하지 않고, 식량안보와 미래 산업 육성이라는 국가 전략과 연결하고 있다. 특히 20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민간 기업과 정부 주도 프로젝트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규제와 실증 기반도 점차 다듬어지고 있는 추세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기업들과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있고, 교토·오사카 등의 지방 거점에서도 관련 프로젝트가 확산 중이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이노파스트, 인테그리컬처, 시그마 테크놀로지스 등 바이오 및 조직공학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이 눈에 띈다. 이들 기업은 주로 배양액의 원가를 낮추는 데 집중하거나, 근육세포 배양을 위한 지지체 소재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인테그리컬처는 오픈소스 배양 플랫폼을 지향하며, 중소기업과의 협력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는 일본 특유의 지역분산형 산업구조와 맞물려, 지방 중소 식품업체들과의 연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2021년부터 일부 식품기업은 규제자유특구 내에서 배양육 실증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후생노동성과 농림수산성은 식품위생법 개정 논의를 통해, 배양육의 등재 기준과 평가 절차를 정립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아직 미국이나 싱가포르처럼 상업적 판매 승인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일본은 규제 정비의 속도를 점차 높여가며 시장 진입을 위한 기반을 닦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일본이 국제 시장에서 배양육의 품질표준이나 윤리 기준에 있어 독자적인 기준을 설정하려는 시도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고기 소비문화와 식감에 대한 요구가 뚜렷하기 때문에, 일본 배양육 기술은 ‘현지 맞춤형’ 식품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일본 배양육이 차별화된 식문화를 수출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술 중심, 품질 중심, 윤리 중심의 세 가지 축을 모두 고려한 배양육 전략이 점차 일본식 모델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주요국의 배양육 정책과 일본의 대조적 전략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배양육 상업 판매를 승인한 국가는 싱가포르였다. 2020년 싱가포르 식품청(SFA)은 Eat Just의 배양 닭고기 제품을 정식 식품으로 승인하며 세계 최초 상용화를 기록했다. 싱가포르는 규제 시스템이 일원화되어 있고, 식품혁신을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했다. 정부 주도의 지원 프로그램과 민간 R&D가 긴밀히 연결되면서, 신속한 기술 검증과 안전성 확보가 가능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미국은 기술적 기반과 민간 자본 투자가 가장 활발한 국가 중 하나이다. Upside Foods, GOOD Meat, Believer Meats 등 수십 개에 이르는 스타트업이 셀 수 없이 많은 기술 실험을 진행하고 있고, 식품의약국(FDA)과 농무부(USDA)의 이중 승인 체계를 통해 안전성과 윤리성 모두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23년 GOOD Meat과 Upside Foods 제품에 대한 판매 승인을 완료한 상태로, 배양육 시장의 선두주자로서 기술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은 2023년부터 본격적인 정부 지원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중심이 되어 배양육에 대한 안전기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경상북도는 배양육을 포함한 미래 식품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자유특구’를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상용화 단계까지는 아직 기술적 성숙도나 투자 규모, 소비자 수용성 측면에서 과제가 많다는 평가다. 현재까지는 샘플 단위의 연구·개발 중심이며, 일본과 비슷하게 보수적이고 단계적인 상용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국가들과 달리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국내 식문화와 융합 가능한지’, ‘지역 사회와 연계된 산업 생태계 구축이 가능한지’를 먼저 고려한다. 이는 단기 수출보다 중장기 내수 기반 배양육 산업을 위한 토양을 다진다는 전략에 가깝다. 즉, 기술을 상업화하는 속도보다 ‘문화에 맞는 기술’을 설계하려는 점이 일본 배양육 산업의 특이점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규제 완화보다는 사회적 수용성과 품질표준을 선제적으로 정립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각국은 배양육을 단순한 미래 식품이 아닌, 식량 안보·산업 전략·소비자 감성까지 포함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다루고 있다. 일본의 접근은 ‘사회와 기술이 함께 가야 한다’는 철학이 반영된 결과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독자적 위치를 점하고자 하는 긴 안목이 담겨 있다.
일본 배양육 기술이 던지는 질문, 그리고 우리의 방향
도쿄대학교의 11g 배양 치킨은 단지 실험 성공을 넘어, 한 국가가 배양육을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단백질 자체의 생산 효율만을 따진다면 미국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아직은 한 걸음 느린 걸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속도가 아닌 방향을 택했다. 기술이 사회적 신뢰를 얻고, 식문화에 스며들어야 비로소 배양육은 진정한 일상식이 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연구 단계에서부터 윤리성과 품질 규범, 소비자 인식까지 포함한 통합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행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단순히 해외 기술을 벤치마킹하거나 빠르게 제품화하는 것을 넘어, 지역 사회와 식문화에 맞춘 독자적 기술모델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역시 고령화와 기후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는 만큼, 단백질 자원의 지속가능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일본처럼 소비자 신뢰를 바탕으로 한 규제 설계, 사회적 논의 기반의 기술 수용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앞으로 배양육은 과학 기술의 결과물이자,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 될 것이다. 단순히 생산량이나 시장점유율만으로 평가하기보다, 각국이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지가 진짜 경쟁력이다. 일본의 사례는 배양육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기술 그 자체보다 더 복잡한 여정이 존재함을 일깨워주는 현장이자, 그 여정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통찰을 던져주고 있다.